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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독자 기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둔갑한 '무장포고문'

2025. 06.27. 10:35:33

지난해 7월 24일 자 전북일보는 '무장포고문'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1894년 3월 20일 전라도 무장에서 동학농민군이 혁명을 시작하며 발표했다는 이 포고문은 "지배층에 대한 비판과 혁명의 배경과 목표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장포고문'은 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역사적 근거가 없고 조작된 문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봉준의 공초, 손화중과 최경선에 대한 판결문 어디에도 무장이 '기포지'라는 언급은 없다. 오히려 당시 동학군은 고부에서 봉기하여 황토현으로 향했고, 무장은 관군의 동향을 듣고 일시적으로 회군한 '경유지'였다는 것이 명확한 문헌상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장포고문은 수년간 정부 공식 행사, 기념사업, 그리고 교과서 서술에까지 반영되며 사실상 '정설'처럼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20년에는 신순철 씨가 이 포고문을 발굴했다는 공로로 고창군으로부터 '녹두대상'(부상금 1천만 원)을 수상했고, 앞서 2013년에는 전북일보 특별취재팀 기자 3명(김은정·문경민·김원용)이 관련 보도로 같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는 지역 언론, 행정, 학계가 연결된 구조적 공모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자아낸다.

더 큰 문제는 국가기념일 행사에서 이 조작된 문서가 공식적으로 낭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11일,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열린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에서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 우원식 국회의장, 장미란 문체부 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무장포고문이 예행연습끼지 하고 6인의 낭독자에 의해 읽혔다.

이 중 '우두머리' 역할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맡았고, 이어 문승우 전라북도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이 취태를 보였다.

김관영 지사는 낭독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마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김일성 담화문'을 낭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역사 왜곡의 상징적 사례다.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무장포고문 조작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신순철 이사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만 알려지고, 알 수있는것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를 공부했다.

원광대학 시절에는 '신명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990년 대 동학혁명 100주년 당시 사학자로 변신 신명국에서 본명인 신순철로 개명했다.

전북의 명사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명성을 이용하여 문체부 특수법인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설립에 관여, 이사에서 이사장직까지 오르며 30년 넘게 기념사업을 이끌어왔다.

동학농민혁명은 근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자료가 없다. 남아있는 것은 전봉준 공초와 손화중, 최경선에 대한 판결문 정도다.

이 취약한 사료 상황을 이용해 신순철 씨는 첫 작업이 1998년 9월 역사서에도 없는"무장포고문"을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실록 동학농민혁명사'를 출간했고, 이후 2022년까지 총 4쇄가 전라북도 예산으로 발행됐다.

이 책은 사실상 동학혁명 왜곡의 출발점이었다.

나는 지금,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감정을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묻고 싶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문서를 국가기념행사에서 낭독하고, 교과서까지 바꾸는 일이 정당한가?

역사적 상징을 왜곡하여 공공예산과 명예를 얻는 행위가 과연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념하고, 무엇을 위해 기억하는가.

잘못된 해석은 미래 세대에게까지 왜곡된 역사를 남긴다.

동학농민혁명이 보여준 '사람이 하늘이다'는 정신은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정직하게 되새겨야 할 가치이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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