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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혼돈의 시대, 스승 길재의 삶에서 오늘의 교육을 생각하다
길재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을 지키며 학문과 교육에 전념, 혼란한 시대에서도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 교육의 가치를 실천했다
권력(權力)과 영달(榮達)보다 학문과 도리를 선택, 오늘날 교육이 지향해야 할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26. 10.02. 17:08:07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말 개경(開京)의 폐허를 바라보며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가 읊은 이 시조는, 조선이라는 새 왕조 앞에서 그가 느낀 상실과 시대적 비통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으로 조선 개국 직후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과 교육에 전념한 성리학자이자 교육자 길재. 그의 삶은 단순한 충절(忠節)의 표상이 아니라, 오늘날 교육의 가치와 방향을 다시 묻게 하는 거울이다. 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학문과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조용한 실천의 길을 걸었다. 세상이 요동쳐도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 학문의 힘이었다. 그가 선택한 침묵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더 큰 책임감에서 비롯된 윤리적 결단이었다.



길재는 경북 선산 출신으로, 아버지 길원진은 고려 지방 관직인 지금주사(知金州事)를 역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사랑했으며, 고려 후기 성리학을 이끈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등 당대 최고의 석학에게 배웠다. 이들과 함께 '고려 삼은(三隱)'으로 불리며 학문과 절의(節義)를 겸비한 인물로 존경받았다. 그의 학문은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 성리학이 지향하는 도덕적 인간상과 공동체 정신을 깊이 새겨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다졌다. 무너져 가는 사회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자 했으며, 어려운 시대일수록 학문에 더욱 몰두하며 조용히 미래를 준비했다.



고려 말부터 성균관(成均館)에서 교육에 참여한 길재는 지식 전달을 넘어, 도(道)를 전하는 데 교육의 본질을 두었다. 강단에서 학생들과 삶의 의미와 실천을 함께 고민했고, 엄정하면서도 인간적인 태도로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가르침은 시험공부를 넘어, 삶의 자세와 국가(國家)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했다. 길재의 강의실은 시대를 바꿀 인재를 키우는 도장이었으며, 제자의 개성(個性)과 수준에 맞춘 맞춤형 교육을 실천해 각자의 강점을 살렸다. 이는 오늘날 교육의 이상을 앞서 실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30대 중반 무렵 어머니 봉양을 위해 잠시 관직을 떠난 기록이 있으며, 이는 그의 유교적 효(孝) 사상을 잘 보여준다. 평생 유교적 가치를 몸소 실천한 길재에게 '불사이군(不事二君)'은 단순한 저항의 구호가 아니라 삶의 철학이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그는 공개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고 조용히 고향에 머물며 교육과 저술에 전념했다. 이 점에서 길재는 무력 저항도, 적극적 협력도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한 인물로서 교육적 성찰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그의 선택은 정치적 계산이 아닌 도덕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제자들에게도 성급한 출세보다 인격 수양과 학문적 깊이를 먼저 세울 것을 강조했다.



그는 교육자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그의 영향 아래 김숙자(金叔滋), 최운룡(崔雲龍) 등 후대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그의 학문을 계승하고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길재의 학문은 관학과 사학을 아우르는 조선 사상의 뿌리가 되었다. 그는 『야은집(冶隱集)』,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 『야은속집(冶隱續集)』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이들 저술은 당시 교육 이념과 도덕적 이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특히 『야은언행습유록』에는 그의 인품과 제자에 대한 애정, 철학적 일관성이 잘 담겨 있다. 다만 이 저술들은 후대에 편집·보완된 점이 있으므로 주의 깊게 해석해야 한다.



길재에게 교육이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실천이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시대를 바로잡고, 학문을 통해 인간을 회복하고자 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길재의 삶은 오늘날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가르침'이란 단지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시대적 책임을 성찰하고 인격을 함양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길을 제시하는 일이다. 요즘처럼 입시 중심 교육이 학생 개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흐리게 할 때, 길재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교육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진정한 교육은 지식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데서 시작된다. 교육이란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실천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길재(吉再)는 교육이란 결국 인간을 이해하고 키워내는 일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끝내 조선 개국의 벼슬을 마다했지만, 정치권력보다 깊고 오래 남는 영향력을 제자들과 후학을 통해 남겼다.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는 단순한 정치적 충성을 넘어,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신념과 원칙을 지킨 이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이는 우리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조용하지만 단호했던 그의 선택은 참된 교육의 길을 묵직하게 일러준다. 그는 드러난 명예보다 내면의 진실을 좇는 학인의 자세를 지켰으며, 그 삶은 학문과 도덕, 교육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음을 몸소 증명했다.



오늘날 학교 현장은 급변하는 사회와 불확실성 속에서 교육이 나아갈 방향과 본질을 잃기 쉽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을 향해야 하며, 지식은 인격 위에 세워져야 한다. 고려 말 혼란 속에서도 조용히 곧은 길을 걸었던 교육자, 야은 길재의 삶은 오늘날 교육이 다시금 되새겨야 할 본보기다. 그는 권력이나 영달보다 학문과 도리를 따르며, 끝까지 스승의 길을 지켰다.



길재(吉再)는 단순한 고려의 충신을 넘어, 시대를 초월해 참된 교육의 가치를 일깨우는 스승이었다.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가? 교육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더욱 '사람됨'을 중심에 두고, 지식과 인격이 함께 성장하는 교육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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