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는 "통섭(統攝)"이란 개념으로 한국사회의 인문분야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킨 존경받는 석학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인문학자가 아니라 동물 행동 중심의 생물학자다. 그가 "통섭(統攝)"이란 화두를 우리 사회에 들고나온 데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는 20세기 말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연결을 통하여 지식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뜻에서 '통섭'에 대한 학문적 이론의 체계를 다시 재정립한 명문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그의 스승인 탓이 크다.
"통섭"의 일반적인 의미는 각각의 인간이 인지하는 환경이나 특성에 따라서 생겨나는 다양성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사람들 간에 서로 협의하거나 의사소통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합의를 이뤄냄으로써 상호 간의 갈등이나 불일치를 조정하고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지식의 통합을 말한다. 서로 대립적인 입장이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 간의 협상, 중재, 조정, 협의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신뢰를 구축하고 지속 가능한 방안을 도출하여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 "통섭"의 학자 최재천 교수가 이번에 9년간의 장구한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 「숙론(熟論)」이란 새로운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말을 빌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숙론은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 지난 2018년 민선 7기를 시작하며 장충남 군정은 소통(疏通)과 화합(和合)을 표방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했고 각종의 실험적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기에 이번에 발간된 최재천 교수의 '숙론(熟論)'은 필자에게 있어선 상당히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6년을 훌쩍 넘긴 지금,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쯤 서서 '숙의(熟議)'를 고민하고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대통령 부부가 해괴한 사람들 몇 명의 궤변에 놀아난 것처럼 연일 보도되어 국민을 혼돈 속에 몰아넣고, 시세 말로 "아이고! 저런 것들을 국가의 영도자라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라는 자괴감을 읍소하는 여론마저 비등해지고 있다. 국회는 또 어떤가? 국민은 안중에 없고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면서도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는 포장된 위선으로 제 주장만 하기에 바쁜 독선자들로 여의도를 채우고 있지 않은가?
숙론(熟論) 하지 않는 지도자들의 행태가 이러하니 국민도 우왕좌왕 한쪽에선 촛불을 들고 탄핵을 외치고 또 한쪽에선 야당의 대표를 처단해야 한다는 태극기 부대가 극렬하게 충돌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대외적으론 미국의 대통령에 트럼프가 선출됨으로써 주한미군에 대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받고 있고, 미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할 것이란 불안감도 우리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참전함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남북긴장의 고조, 끝나지 않은 중동지역의 전운 등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대내적으론, 의사협회와 정부 간 의료대란의 갈등이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잡은 지 오래되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참담하게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할 만한 예측치를 내고 있다. 정규, 비정규직 간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소득의 재분배, 급격하게 진행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사회보장책도 마련해야 한다. 정년의 연장, 대학의 통폐합, 나아가 지역의 통폐합 등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이 예상되는 커다란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숙론(熟論)을 통하여 발전적 통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이를 주도해야 할 지도자가 고도의 기술적 기교를 발휘해야 함에도 지도자는 보이질 않는다. 그런 준비를 하라고 뽑아준 대통령의 지지율은 20%가 채 안 되고, 야당은 나 먼저 살고 보자고 사법부를 옥죄고 국민을 거리로 불러내고 있고, 여당은 이를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미쳐가고 있다. 그야말로 지금의 한국사회는 역대 최대의 갈등과 혼돈 속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남해라고 모든 게 제대로 잘 돌아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러 군데서 잡음이 들린다.
남해는 숙론(熟論)을 통하여 대한민국을 개벽시킨 특이한 지역이다. 행자부 장관과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두관이 민선 1, 2기 군수 시절, 한국의 매장 문화는 쉽게 바꿀 수 없다는 통설을 깨고 장묘문화의 기념비적 성공을 이루어 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전국은 오히려 화장장이 부족하여 아우성이다. 남해로부터 시작하여 대한민국이 변화된 소중한 숙론(熟論)의 성공적 자산이다. 최재천 교수도 숙론(熟論)을 이야기하며 한국사회에 숙론(熟論)의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신하는 구체적 사례로 남해의 장묘문화를 들고 있다.
나는 해양초등학교 3회다. 졸업한 지 53년이 되었다. 동무들이 내장산을 거쳐 서해안을 돌며 단풍여행을 다녀왔다. 내 동무들은 특별히 자기 자랑하는 이가 없다. 항상 그러려니 하고 다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건강을 이유로 일 년 내내 계 모임도 참석하지 못하고 회비도 밀렸다. 이번 여행도 동참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불성실함에도 여행 다음 날 빛깔이 근사한 소고기가 곱게 포장되어 택배로 왔다. 여행을 마치면서 작별하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소고기가 참 맛이 있었는데 참석하지 못한 8명이 눈에 밟히더란다. 그래서 동무들 몇이 긴급제안을 했고 만장일치 된 마음을 전하니 잘 먹으라는 전언과 함께였다. 고맙고 부끄러웠다.
배려를 통한 감동, 지도자의 혜안,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 같은 것들이 전제될 때 공동체는 아무리 어려운 경우라 하더라도 합의를 이뤄내고 성장한다. 권력 앞엔 굴복하고 낮은 곳엔 군림하는 방식으론 소통은 없다. 면전에서는 승복하는 척하지만 뒤돌아서면 두고두고 골 깊은 앙금을 털어낼 수가 없다. 생각이 깊은 과학자의 냉철한 지성이 담긴 책을 읽으며 그의 매서운 채찍에 가슴이 아린다. 늦은 밤 우수수 비처럼 갈잎이 떨어진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고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