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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년특집 남해인 초대석 - 새해 남해인 초대석-40년 타국생활을 끝에 남해에 둥지 튼 김진주(73) 씨
진주 씨의 73년 인생 드라마…"포기하지 마세요"
하와이 깡통 줍던 손으로 일궈낸 파란만장한 인생,
11년 침묵을 깬 전화, '엄마, 나를 잊지 않았군요'
'서른하나의 절망은 일흔셋의 진주로 돌아왔다'

2026. 01.02. 09:30:05


새 해 벽두 남해미래신문은 우리 이웃의 숨겨진 인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병오년 새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시길 기원하는 마음에서다. 장기화되는 고환율과 물가 상승으로 기름값을 비롯 모든 생필품값이 오르고 있다. 만원으로 장바구니에 담을 물건이 여의치 않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40여 년 외국 생활을 끝마치고 남해에 둥지 튼 김진주(73) 씨의 눈물겨운 삶은 '아무리 깊은 뻘밭에 갇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눈부신 진주를 빚어낼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좌절보다는 다시 힘을 내어 역경을 이겨내는 감동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가에게는 삶의 지표가 된다. 한때 하와이에서 깡통을 주워 모으면서도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낸 김진주 님의 인생 이야기는 남해FM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다. <편집자 주>




남해군 이동면 난음마을. 창문을 열면 정겨운 산새가 마당까지 내려앉고, 담장 너머로는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시금치 향기와 함께 배어 나오는 곳이다.
이곳에는 최근 아주 특별한 이름표를 단 어른이 살고 있다. 40여 년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마침내 '진짜 내 이름'을 찾은 김진주(73) 씨다. 지난 26일 '남해인 초대석'을 통해 만난 그녀의 인생은 한 권의 소설, 아니 한 편의 인생 드라마였다.



절망의 끝에서 택한 '이민'


그녀의 고향은 사천 서포다.
바다를 건너면 바로 닿을 듯한 이웃 동네지만, 40년 전 서른하나의 진주 씨에게 이곳은 탈출하고 싶은 감옥과도 같았다.
지독했던 첫 번째 결혼 생활은 그녀의 영혼을 조각냈다.
가정 폭력은 일상이었고, 온몸에 남은 멍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그녀를 보호해줘야 할 가족들조차 그녀의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
'온몸이 시퍼런 멍투성이였어요. 한국 남자가, 아니 나를 지켜주지 않는 이 나라 자체가 너무 미웠습니다. 큰언니를 붙잡고 울며 빌었죠.
어디든 좋으니 제발 나를 멀리 보내달라고요.'결국 아홉 살 난 어린 아들 양육권까지 뺏기고 그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것은 희망을 찾아 떠난 유학도, 화려한 이민도 아니었다.
살기 위해 택한 처절한 '도망'이었다.
1980년대 중반,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린 그녀의 손에는 낡은 가방 하나와 '땡큐', '오케이'라는 단 두 마디의 영어가 전부였다.
그 가방 속에는 아들을 떼어놓고 온 어미의 피눈물만이 가득 차 있었다.



깡통 하나에 3원... 하와이에서 보낸 시간들


하와이는 관광객들에게는 낙원이었지만, 영어 한마디 못하는 이방인 여인에게는 거대한 벽이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억척스러워져야만 했다.
길거리에 버려진 물병과 깡통을 주우면 3원, 5원이 손에 쥐어졌다. 식당 설거지부터 피자집 바닥 닦기까지, 잠잘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몸을 혹사했다.
"한 식당에서 일할 때였어요. 손님이 팁을 주길래 그저 '오케이, 땡큐'라고 했죠. 그런데 그게 나중에 큰 오해가 됐습니다.
영어를 모르니 그게 '그래?'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 줄 몰랐던 거죠. 퇴근길에 남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수모를 겪으며 화장실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수치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독일인 군인 부부가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2년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입 모양을 따라 하며 턱이 빠질 듯한 고통을 견뎠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 그녀는 의자가 단 6개뿐인 작은 식당을 열었다.
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도, 명절도 그녀에게는 그저 '돈을 벌어 아들을 만나러 갈 시간'을 단축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가려면 가라, 나는 너를 믿는다" 수양 어머니가 건넨 1억 원의 기적
 

 성실함으로 무장한 그녀에게 결정적인 도약의 기회를 준 것은 하와이에서 맺은 또 하나의 귀한 인연, 바로 '하와이 수양 어머니'였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어렵게 모은 돈으로 첫 가게를 꾸려가던 중, 그녀는 더 큰 꿈을 위해 두 번째 가게 인수를 결심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한국 돈으로 약 1억 원이라는 거금이 절실했다.
 아무런 담보도, 보증인도 없는 혈혈단신의 이방인에게 은행 문턱은 너무나 높았다.
 절망감에 주저앉아 울고 있던 그녀에게 평소 그녀를 눈여겨보던 한 한국인 할머니가 다가왔다.
 지금은 96세가 되어 여전히 하와이에 생존해 계신 수양 어머니였다.
 "너 왜 울고 있니?"라는 물음에 사정을 털어놓자, 수양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거액을 내놓았다. 차용증 하나 쓰지 않은 채였다. 진주 씨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줌마(어머니), 나 집도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이거 떼먹고 도망가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러자 수양 어머니는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가려면 가라. 나는 너를 믿는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내가 봐왔지 않느냐."이 무조건적인 신뢰는 진주 씨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했고, 결국 성공적으로 가게를 일궈냈다.
 


11년 침묵을 깬 전화, '엄마, 나를 잊지 않았군요'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두고 온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9살에 헤어진 아들은 어느덧 20살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 집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낸 아들의 목소리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여보세요"라는 목소리에 진주 씨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단번에 알았죠. 내 아들이구나. '아들아!'라고 외치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아들이 그러더군요. "엄마, 내 목소리 안 잊어버리셨네요."라고요.
 그 한마디에 지난 11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 밤으로 당장 비행기 표를 끊어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그녀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결혼을 시키고, 손주를 품에 안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미국에서 번 돈은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형제들의 생활비로, 조카들의 학비로, 암 투병 중인 남동생의 치료비로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정작 본인은 16번의 큰 수술을 받을 정도로 몸이 망가졌지만, 가족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정한 사랑, 그리고 '김진주'로의 부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찾아온 지금의 남편은 그녀의 굴곡진 삶을 온전히 품어준 안식처였다.
 "나는 당신의 돈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며 그녀의 손을 잡아준 남편 덕분에,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평온한 행복을 느꼈다.
 4년 전 시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워하던 그녀에게 남편은 먼저 제안했다. "당신의 고향, 한국으로 가자"고.2년 8개월 전, 그녀는 남해로 향했다. 50년 전 남해로 시집와 뿌리 내린 여동생이 있었고, 남동생과 남편이 서로 아는 사이였던 인연이 닿았다.
 미국 이름 '진주 맥키니스'를 버리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며 그녀는 다시 '김진주'가 되었다. 1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귀화 과정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자 남해 군민이 되었다.
 


'다섯 손가락이 다 다르듯, 사람도 다 다른 법이죠'
 

 현재 이동면 난음마을에서 지내는 그녀의 하루는 활기가 넘친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살갑게 '오빠', '언니'라고 부르며 다가가는 그녀는 동네의 분위기 메이커다.
 80대, 90대 언니들에게 '동생들 왔어?'라고 농담을 던질 만큼 넉살도 좋다.
 작년에는 난생처음 시금치 밭에서 땀 흘려 돈도 벌어보았다. 억척스럽게 모은 그 소중한 용돈은 다시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로 향했다.
 그녀는 요즘 '배 선생님'이라 부르는 자원봉사자에게 한글을 새로 배우고 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던 어린 시절 오빠의 책을 훔쳐보며 밭에서 몰래 독학했던 서러운 배움을 넘어, 이제는 글자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세요. 길고 짧고 굵기가 다 다르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저 사람이 나랑 다르다고 해서 미워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하면 세상에 미운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매일 꽃밭 길을 걷고 있어요.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이웃이 보이는 남해가 제 인생의 마지막 천국입니다."서른하나의 절망은 일흔셋의 찬란한 진주가 되어 돌아왔다. 그녀가 남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에는 세월도 꺽지 못한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었다. 김진주 씨의 인생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무리 깊은 뻘밭에 갇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눈부신 진주를 빚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이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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