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현실을 외면한 규제는 농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농촌의 미래를 가둘 수 있다.
나는 1963년, 당시 인구 약 13만 명에 이르던 활기찬 섬 남해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다녔고, 세상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불혹의 나이에 다시 품에 안긴 고향 남해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때 13만명에 가까웠던 고향의 인구는 이제 겨우 4만명의 언저리에 있다. 사람은 떠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잦아들었으며, 마을 곳곳에는 굳게 닫힌 빈집과 잡초로 뒤덮인 채 묵혀진 농지 뿐이다. 나는 고향에서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꼬박 11년째다.
공인중개사로서 주로 시골의 토지를 중개하다 보니 농지법은 물론 건축법과 산지관리법 등 토지 이용과 관련된 법령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법을 알아야 고객의 소중한 재산을 지킬 수 있고, 잘못된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산적 피해를 주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농지법을 들여다 볼 때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며 깊은 한숨이 나온다. 법의 취지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농지는 소중한 식량 생산의 기반이며, 투기와 불법 전용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공공재적 가치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오늘날 농촌의 차가운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농지를 지키기 위한 제도가 정작 오늘을 살아가는 농민의 삶을 옥죄고, 농촌의 마지막 활력마저 꺼뜨리고 있다면 이제는 제도 자체를 고민하고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농사를 지을 사람은 줄어드는데, 규제는 더욱 촘촘해진다남해의 농촌 현실은 잔인할 만큼 명확하다.
농민은 고령화되고, 그 뒤를 이을 젊은이는 찾기 어렵다. 과거에는 자식들이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농업을 생업으로 선택하는 청년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턱없이 부족한 노동력과 치솟는 농기계·인건비 부담 때문에 결국 경작을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현실에서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둘러싼 규제만 겹겹이 쌓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농지를 팔고 싶어도 매수자를 찾기 어렵고, 임대를 주고 싶어도 까다로운 법적 요건과 처벌을 걱정해야 한다.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과 심사 등은 투기를 막는 신중한 장치이지만, 지역의 처절한 여건과 실제 영농 가능성을 도외시하면 정상적인 거래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는 땅, 경작할 손길이 없는 땅, 매수자도 임차인도 찾지 못해 발을 구르는 땅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날의 풍경이다.
그런데도 모든 농지를 동일한 잣대로 바라보며 오직 소유자에게 직접 경작만을 요구한다면, 과연 그곳에 농업의 지속 가능성이 남아있을까.
농촌에서 농지는 단순한 투기 대상이나 부동산이 아니다. 평생 흘린 땀방울로 일궈낸 재산이자, 고령의 농민들에게는 남은 노후를 지탱할 유일한 생명줄과 같다. 그 땅을 처분해 빚을 갚고 당장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하려 해도 거래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농민에게 농지는 삶의 짐이자 벗어나기 힘든 무거운 멍에가 될 뿐이다.
농지전수조사, 처벌에 앞서 따뜻한 출구부터 마련해야 한다정부가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파악하고 불법 투기를 바로잡겠다는 취지 자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이용되지 않거나 법을 위반한 사례가 있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의 정당성은 단순히 벼랑 끝에 세우는 조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조사 이후 어떤 조치가 뒤따르는지, 그 조치가 과연 현장에서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지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고령과 질병, 피폐해진 삶의 무게앞에서 더 이상 꽹이를 들지 못하는 노인과, 개발 이익만을 노리고 농지를 사들인 투기꾼을 과연 같은 저울에 달아야 하는가.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연이 저마다 제각각인데도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평생을 땅과 함께 살아온 선량한 농민들만 죄인처럼 두 번 울리게 된다. 설령 처분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실제로 받아줄 매수자가 없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농지은행을 통한 매도나 임대 위탁 역시 모든 농지에게 공평한 기회가 되어주지 못한다. 위치와 영농 여건, 예산의 한계에 따라 도외시되는 땅들이 수없이 많다. 팔 수도 없고 맡기지도 못하는 땅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매서운 처분 부담과 이행강제금까지 떠안아야 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법 집행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폭력에 가깝다. 현실에서 숨 쉴 수 있는 대안을 먼저 건네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출구 없는 규제는 질서를 잡기보다 깊은 불안과 원망만 낳을 뿐이다. 불법 투기는 쾌도난마 식으로 엄정하게 다스리되, 불가피한 사정으로 휴경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에게는 합리적인 유예와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경자유전의 원칙, 시대의 흐름에 맞게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역사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거의 원칙이 오늘날 마주한 모든 생생한 현실의 유일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지금의 농업은 과거와 판이하다. 첨단 농기계와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었고, 규모화와 전문적인 경영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농지의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반드시 한 사람이어야만 효율적인 농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땅을 가진 이와 전문적으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이들이 지혜롭게 협력할 때, 우리 농업의 경쟁력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우량농지를 보존하고 무분별한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본질은 변함없다. 다만 식량 생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규제와, 단순히 과거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옥죄기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이제는 '누가 이름을 올리고 소유하느냐'보다 '누가 이 땅을 어떻게 가꾸어 가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영농을 보장하면서도 임대차와 거래가 현대 사회의 흐름에 맞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의 결을 다듬어야 한다.
젊은 인력과 자본이 기꺼이 농촌으로 스며들 수 있는 열린 길을 내어주어야 한다. 농촌을 살리는 정책은 책상이 아니라 뜨거운 현장에서 시작된다. 공인중개사로서 나는 토지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 그리고 매수를 꿈꾸는 이들의 숨소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다. 법전 속에 적힌 반듯한 원칙과 현장이 품은 눈물겨운 사정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다. 정책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정부와 입법기관에 간절한 마음으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농지 거래와 임대차 제도를 현실의 발걸음에 맞추어 융통성 있게 개선해야 한다.
둘째, 고령과 질병으로 지친 농민들에게 실효성 있는 따뜻한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셋째, 농지전수조사라는 획일적인 잣대를 버리고 지역마다 다른 인구와 경제적 특성을 세심하게 반영해야 한다. 넷째, 농지를 단순히 '단속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지역 경제가 숨 쉬는 소중한 기반으로 여겨야 한다. 이 모든 지혜는 차가운 책상 위가 아니라, 땀 흘리는 농민들의 거친 손길과 현장의 목소리 속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농지를 지키려다, 우리가 품은 농촌을 잃어서는 안 된다1963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남해와, 오늘날 적막이 감도는 남해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통계 속 숫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마을의 온기가 식고, 학교가 문을 닫고, 우리가 기억하는 고향의 얼굴이 통째로 지워진다는 뜻이다.
농지를 투기로부터 지키는 일과 농민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일, 식량의 뿌리를 내리는 일과 농촌의 활력을 살리는 일은 서로 등을 돌리고 구분 지을 일이 아니다. 어느 하나를 살리겠다고 다른 하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미래도 만들 수 없다.
법과 제도는 결국 사람의 행복과 삶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농지를 진정으로 지키고 싶다면, 그 땅을 일구어온 농민들이 스스로 기쁘게 지켜낼 수 있도록 품어주어야 한다.
농촌을 살리고 싶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진짜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제 정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다. 지금의 차가운 규제는, 진정 누구를 위한 칼날인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 농촌을 살리기 위해 길을 걷고 있는가. 농지제도, 과연 규제만이 유일한 답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