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이 가고 을사년(乙巳年)이 밝았다. 새해의 시작을 어떤 말로 군민들에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난해 말에 발생한 비상계엄령 사태는 온 국민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고 쉽게 지우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안겼다. 지난 12월 29일에는 전남 무안공항에 착륙하려던 여객기가 추락하여 2명을 제외하고 179명 전원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도 발생했다. 온 국민은 경악했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명쾌하게 설명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우리는 또 한 해를 맞이한 것이다.
그야말로 금 년 새해는 벽두부터 탄핵과 여객기 사고로 인해 놀란 국민의 가슴을 어떻게 진정시키고 한꺼번에 터져 나온 난제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 것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정국이다. 이렇게 엄중한 상황임에도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대통령은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어 있고, 권한대행을 맡은 국무총리마저 탄핵 소추되어 부총리가 승계하는 기이한 현상에 놓여있다. 미증유(未曾有)의 사태를 맞이한 국민은 오로지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결정을 내릴 것인가를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하는 불안한 시국이라 감히 어떻게 편안과 행복을 빌어야 할지 심경이 복잡하다.
정치권은 국가의 미래나 국민의 행복을 위한 구국의 결단인 것처럼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지만 각자 자기 진영의 유불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 상황을 처리해 가는 과정에서 여야가 보이는 수습책은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저들만을 중심에 두고 유불리를 따져서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심지어는 민주당의 일부 인사나 조국혁신당은 당론으로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탄핵마저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발상은 사실상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로 몰고 가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요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포함하여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무회의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따라서 현행의 경우는 11명 이상이 출석해야 개의할 수 있고 심의안건에 대한 가결조건은 8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등 3명이 탄핵소추로 업무 정지되었고,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등 3명이 공석이니 지금 남은 국무위원은 15명에 불과하다.
만약에 더불어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압도적 다수의 의석수를 악용 비상계엄에 동조한 명목으로 5명 이상의 국무위원을 동시에 탄핵소추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일시에 무정부 상태가 되고 국무회의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실상 국정 마비다. 국회가 정족수를 통과한 요구사항을 행정부에 통지하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워진다. 일정 시간(15일)이 지나면 즉각 발효되고 국정은 국회 다수당이 좌지우지하는 입법독재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헌법에 재의요구가 반드시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이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을 면하기는 어렵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과 조국혁신당의 이런 주장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탄핵 결정이나 김건희 특검법에 수용에 대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의 대통령권한대행의 권한대행에 대한 압박인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엄밀하게 보자면 조국(曺國)의 경우 자녀의 입시 비리 사문서위조 등으로 선량한 청소년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빼앗은 파렴치한 행위와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범죄를 저지른 명백한 범죄자이다. 이재명 또한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의 중대범죄로 재판에 계류되어 있다. 현 시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야권이 정권을 차지하려면 사실상 이재명대표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래서 무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이재명을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딜레마다. 그런 딜레마가 이 불안한 정국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덜'교수는 한국의 비상계엄령 사태를 바라보며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탄핵안 가결만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최종 단계는 한국 정치의 극단적인 분열을 이겨내는 데 있다고 하며 "민주주의적 덕목은 서로의 이견을 공적 영역에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노와 극단, 비난과 욕설이 아닌 예의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진정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만 민주주의를 쇄신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섭(統攝)과 숙론(熟論)의 지혜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하여 우리는 거리로 나서는가? 우리가 지켜줘야 할 어린 학생마저도 형광봉을 들고 언 손을 호호거리며 이분법적인 단순 논리로 세상을 재단하려 한다. 이렇게 할 정도로 국민을 패거리 정치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린 정치권은 양심에 물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가? 이 난국을 헤아리고 미래를 제시할 진정성을 가진 지도자가 그렇게도 찾기가 어려운 것인가? 보수와 진보는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제시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다. 각각의 가치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수 있으나,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입장의 대화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변화를 위한 안정"과 "안정을 위한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는 관계여야 한다. 일방의 주장만으로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만 옳다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어서는 안 되고, 행동으로 옮김에 있어 상대를 존중하는 신중함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는 갈등 속에서 치유 불가능하게 된다. 비판은 하되 단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단죄하는 것은 헌법에 정한 절차와 법리에 따라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다. 헌법은 사전에 합의된 국민의 총체적 민의가 함의된 결정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합의된 약속을 지켜야 하고 대중을 선동·선전하여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러함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정도가 도를 지나쳐 평정심을 잃었다. 마치 인민재판식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어느 한쪽을 처단하지 않으면 당장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기세로 남의 집 문 앞에서 극언을 쏟아내고 우리 손으로 뽑은 대표를 짐승 취급하듯 매도하고 있다.
지금 시대에 비상계엄을 잘한 일이라 두둔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가 뽑은 선량이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 그렇게 지탄받아야 할 중죄인인가? 또 이 사태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이 휩싸여 다니는 그런 정도의 성품을 가진 이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던가? 함부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서글퍼진다. 이러는 것은 지역민을 갈등의 수렁으로 몰아갈 뿐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상대 눈에 티끌을 흠잡으려면 내 눈 안의 들보를 먼저 보라 했다. 자중해야 한다. 비판에 정당성을 잃지 마라. 단죄는 특정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과 국민이 위임한 기관, 국민이 선택한 법에 근거해야 한다. 환율이 폭등하고, 증권시장이 하락하는 암울한 경제, 불안한 정치 현실 등 유례없는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어지러운 시절이지만 군민 여러분 모두의 안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특히 항공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의 슬픔에도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