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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미래신문이 만난 사람]-남해에서 피어난 제2의 인생, 가수 강발그레
"70 칠순은 내 인생의 리셋 버튼이었어요" "나는 스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나처럼 늦게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나도 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2025. 06.13. 10:06:18

남해군 고현면 서도마 마을.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 유튜브 구독자 수 2만 5천 명을 자랑하는 트로트 가수가 살고 있다. 이름은 '강발그레'.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녀는 "이제 내 이름은 무대 위에서 더 빛나는 강발그레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70세 생일에 첫 음반을 발매하고, 매주 두 차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시니어 인플루언서'다.



#1 "남해는 내 인생의 안식처이자 새로운 출발점"

처음부터 '가수 강발그레'로 불린 건 아니었다. 도시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던 그녀는 남편의 건강 악화로 인한 조기퇴직으로 조용한 시골에서의 삶을 결심하게 된다. 원래는 강원도에 정착하려 했지만, 폭설로 인해 마음을 고쳐먹었고 따듯한 남쪽을 찾아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남해였다.
"처음엔 이사를 위해 여행처럼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2012년 여름, 남해 고현면 도마리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경을 본 순간, 그냥 '여기다' 싶었죠."그녀는 직접 부지를 고르고 집을 지어 내려왔다. 마당엔 텃밭을 만들고,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도시의 소음 대신 들리는 파도소리, 이웃과 나누는 인사, 계절에 따라 바뀌는 텃밭의 풍경.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남해는 내 인생의 안식처예요. 동시에, 내가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준 고마운 곳이기도 해요."



#2 노래로 다시 살아난 감정, '가수'라는 꿈으로 이어지다

귀촌 초기에는 농사와 정착에 집중했다.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나갔고, 그녀는 하루 대부분을 텃밭 가꾸고 집안일을 하며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제안했다.
"당신 노래 좋아하잖아. 동네에 노래교실 있던데 한번 가보지 않을래?" 그렇게 시작한 노래교실. 처음엔 그냥 취미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노래는 그녀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젊을 땐 라이브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게 낙이었어요. 그런데 가족, 육아, 생계 때문에 음악은 항상 뒷전이었죠. 남해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다시 살아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그녀는 2016년 남해 마늘축제 가요제에서 대상, 2017년 남해 화전문화제 가요제 인기상, 2018년 남해군 풍년기원 가요제 지역예선, 연말결선 대상, 2018년 하동 술상 전어축제 가요제 우수상, 2018년 남해군 생활체육 축전 가요제 대상 등 연이어 상을 받았고, 지역에서 '노래 잘하는 귀촌 여성'으로 입소문이 났다.



#3 "칠순 생일에, 나만의 노래가 생겼어요"

2024년, 그녀의 칠순 생일을 맞아 남편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정식 음반 제작. 작곡가, 작사가와 연결해 녹음실에서 두 곡을 완성했다.
곡명은 '항구의 정'과 '신기루 사랑'. "사실 돈도 많이 들고, 고민도 많았어요. 이 나이에 무슨 가수냐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남편이 '그냥 기념이잖아. 후회하지 않게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항구의 정'은 남해의 항구와 이별의 정서를 담은 전통 트로트이고, '신기루 사랑'은 다소 빠른 템포에 담긴 서정적 트랙이다. 둘 다 그녀의 인생과 연결된 감정을 담고 있다.
"내 이름으로 된 노래가 세상에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어요."



#4 두 개의 유튜브 채널, 그리고 2만 5천명의 팬들그녀는 '강발그레'라는 이름으로 두 개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음악 중심의 '강발그레', 다른 하나는 일상을 담은 '강발그레 꽃 일상'이다.
음악 채널은 커버곡이나 신인가수 노래 소개, 라이브 방송 중심으로, 꽃 일상은 먹방, 텃밭 이야기, 남편이랑 소소한 술자리 같은 일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채널 운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상 촬영, 편집, 썸네일 제작까지 모두 혼자 해낸다.
그녀는 "라이브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낮 1시에 2시간씩. 매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팬들이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요."라며 시종일관 쾌활한 기운을 뿜어 내었다. 그녀는 유튜브에서 알게 된 팬들과의 교류가 "제일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분들이 댓글 남겨주시고, 후원도 해주시고, 심지어는 남해까지 직접 찾아오기도 해요."라면서.



#5 "지역축제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에요"

강발그레 씨는 남해의 각종 축제에서 무대에 서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유명가수 섭외도 좋지만, 지역에 있는 우리 같은 예술인에게도 무대 한 번 주셨으면 해요." 그녀는 올해 마늘축제를 겨냥 해 문화관광과에 직접 찾아가 무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프로그램이 마감된 상태였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내년엔 좀 더 빨리 준비해서 꼭 무대에 서보려고요."



#6 "70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남해군의 65세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3.3%에 달한다. 강 씨는 지역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유튜브, 노래, 뭐든 해보세요. 배우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나이는 숫자일 뿐이에요. 정말로." 그녀는 직접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며 음향기기, 카메라, 편집 기능까지 모두 스스로 익혔다. 하나씩 배워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이걸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고.



#7 "내 인생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강발그레 씨는 여전히 배우고, 시도하고, 노래하며 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스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나처럼 늦게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나도 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녀의 삶은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힘 있다. 지역의 축제에서, 유튜브 방송에서, 때로는 요양원 봉사 현장에서 그녀는 노래한다. 그 목소리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인생을 꿰뚫는 따뜻한 울림이다. "강발그레"라는 이름은 이제 한 사람의 가수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처럼 들린다.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지금부터."


이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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