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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미래 초대석 - 22년 지나, 태평양 건너온 창선의 아들 박현철
젊은 청년들이여, 국내를 넘어, 더 넓은 글로벌 세계를 보라
"지역 청년들에게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 기꺼이 나누고 싶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월급 30~50만 원 수준이어도 현재를 충분히 즐기며 삽니다.
10년 후의 노후를 걱정하며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죠."
"반면 한국 분들은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노후를 준비하느라 정작 오늘의 행복을 놓치고 계신 것 같아요."

2026. 03.27. 14:02:08

고향의 흙내음과 바다 냄새는 22년이라는 긴 타국 생활도, 태평양의 거친 파도도 지우지 못했다.
지난 19일, 남해 창선 고두마을의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라던 소년이, 이제는 250여 명의 현지 직원을 이끄는 글로벌 리더가 되어 고향의 품을 찾았다.
인도네시아 바탐의 경제 지도를 새로 쓰고 있는 박현철 향우(47)의 이야기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동안 타국에서 청춘을 바친 그는, 여전한 고향 사투리로 우리가 잊고 살았던 '꿈'과 '행복'의 본질을 생각하게 했다.



스승의 혜안, 창선 소년을 세계로 이끌다


박현철 향우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순간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지리 선생님은 어린 제자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네가 졸업할 때쯤엔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크게 뜰 것이다"라며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전공을 권유했다.
남들이 영어나 일어 등 익숙한 길을 찾을 때, 그는 선생님의 혜안을 믿고 지도에도 생소했던 인도네시아라는 미지의 대륙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 용기 있는 선택이 오늘날 독보적인 '인도네시아 전문가' 박현철을 만든 시작점이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갔다.
4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조기 취업으로 인도네시아 땅을 밟은 것.
"새벽 4시마다 울려 퍼지는 모스크의 기도 소리에 잠을 설치면서도, 낯선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며 적응해 나갔던 시간들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고 말한다.
왼손을 쓰지 않는 예법부터 현지인들의 정서까지, 그는 철저히 현지인 속에 녹아들었다.
삼성전자에서 18년간 근무하며 글로벌 기업의 시스템을 체득한 그는 이제 싱가포르와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 바탐에서 독자적인 법인을 설립하고 지사장을 맡아 250여 명의 직원을 이끄는 베테랑 기업가로 우뚝 섰다.



"'만성적인 불안'과 '지나친 미래 준비'로 정작 오늘의 행복을 놓치고 계신 것 같아요."


22년의 타향살이는 그에게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거울을 선물했다.
박 향우는 인터뷰 내내 한국인들이 느끼는 '만성적인 불안'과 '지나친 미래 준비'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월급이 30~50만 원 수준이어도 현재를 충분히 즐기며 삽니다.
우리처럼 10년 후의 노후를 걱정하며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죠. 반면 한국 분들은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노후를 준비하느라 정작 오늘의 행복을 놓치고 계신 것 같아요."
최첨단 시대를 상징하는 AI조차 그에게 '6개월의 멈춤'을 권했다는 에피소드는,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시대 모든 '박현철'들에게 던지는 서늘한 경종이다.
그는 이제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성취를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백'임을 강조한다.
그는 바탐의 거대한 대교 밑에서 창선 지족의 죽방렴과 꼭 닮은 원시어업 어장 도구를 발견했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그걸 보며 자신의 운전 기사에게 '이건 내 고향 시골(깜뽕)에 있는 것과 똑같다고 자랑하곤 합니다." 낯선 땅에서도 고향의 흔적을 찾으며 향수를 달래온 그는, 여전히 인터넷을 통해 남해FM 라디오를 들으며 고향의 물때와 소식을 챙기는 영락없는 '남해 사람'이다.



고향의 맛, 장어탕 한 그릇에 담긴 그리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박 향우에게 가장 그리웠던 것은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장어탕의 맛이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장어탕은 고사리가 90%일 정도로 듬뿍 들어가죠. 창선 고사리가 안 들어가면 반찬이 아니니까요."그는 고향의 맛을 '가끔 먹어도 잊히지 않는 맛, 언제든 다시 생각나는 맛'이라고 정의했다.
병상에 계신 노모를 걱정하며 재활 치료를 돕는 그의 모습에서는 글로벌 기업가의 차가운 카리스마 대신, 어머니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막내아들의 따뜻한 효심이 묻어났다.
22년 전 태평양을 건너게 했던 그 열정의 뿌리에는 항상 고향 집 마루와 어머니의 밥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청년들이여, 좁은 문을 넘어 '희귀한 인재'가 되어라


박 향우는 고향 남해의 인구 감소와 청년들의 취업난에 대해서도 묵직한 조언을 던졌다.
그는 한국이라는 좁은 취업 시장에서 '아등바등' 경쟁하기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보라고 권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수많은 한국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일자리는 널려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평범한 무역·회계 전공자일지 모르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현지어와 전문성을 겸비한 '대우받는 희귀 인재'가 됩니다. 경쟁이 덜 치열하면서도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세계 곳곳에 열려 있습니다."실제로 그는 지난 15년 동안 모교인 부산외대 후배들을 위해 밥을 사 먹이며 멘토링을 해왔다.
이제는 그 시선을 고향 남해로 돌려, 남해대학의 유학생들이나 지역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꺼이 나누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 연락처를 남겨둘 테니,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달라"는 그의 제안은 빈말이 아닌 진심 어린 약속이었다.



"언젠가는 고향의 큰 일꾼으로", 멈추지 않는 꿈


박 향우의 어릴 적 꿈은 '남해시장'이었다. 남해를 더 크고 활기찬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소년의 순수한 열정은, 이제 세계를 누비는 기업가의 경륜과 합쳐져 더 깊어졌다. "군수가 아니더라도, 제가 가진 역량으로 고향에 기여할 방법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재능 기부든, 정책 제안이든 고향 남해를 위해 일조하고 싶습니다."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고향 집 앞 바다를 메운 백로 무리를 보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나도 저 새들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고 또 찾아올 것입니다.
저 백로가 꼭 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22년 전, 창선 앞바다를 보며 세계를 꿈꿨던 청년은 이제 그 바다를 닮은 푸른 꿈을 후배들에게 전하려 한다.
남해라는 이름의 항구를 떠난 배가 전 세계를 누비고 마침내 고향의 품으로 닻을 내리듯, 박현철 향우의 여정은 이제 남해의 내일을 밝히는 새로운 항해로 이어지고 있다.
박현철 향우의 모습에서, 세계적인 지사장 이전에 고향을 사랑하는 순박한 '창선 촌놈'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성공이 남해의 자부심이 되듯, 그가 전한 넓은 세상의 이야기가 남해 청년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참고로 박현철 향우의 글로벌 멘토링이 궁금하다면?박 향우는 인도네시아 진출이나 해외 취업을 꿈꾸는 남해 청년들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구체적인 멘토링이나 특강 요청 등은 남해FM(055-862-1588)을 통해 연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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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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