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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목은 이색, 학문과 교육으로 시대와 사람을 세운 위대한 스승
목은(牧隱) 이색은 고려 말 격동 속에서 성리학과 교육을 바탕으로 인재를 길러 시대의 변화를 이끈 위대한 교육자이자 사상가였다
권력보다 학문과 신념 선택한 삶은 교육이 사람을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責任)임을 오늘날에도 보여준다.

2026. 07.31. 15:41:37

경북 영덕이 배출한 고려 말의 대표적 유학자이자 문신·교육자(敎育者)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은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한 가정 이곡(稼亭 李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성리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학문적 영향을 받으며 성리학의 이념과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축하였다. 이후 탁월한 학문적 성취와 고결한 인품을 바탕으로 당대의 지식인 사회에서 높은 명망을 얻었으며, 고려 말 정치·사상적 변동기에 학문과 정치의 중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의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색의 학문을 계승한 정몽주와 정도전 등은 조선 건국 전후의 정치적 전환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중에서도 정몽주, 길재와 함께 이색은 후대에 '고려 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며, 조선 개국이라는 거센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고 은거의 길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보수적 고집이 아니라, 참된 교육자로서의 신념과 책임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의 삶은 고려 말 학문과 정치의 중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자를 길러 학문을 전한 스승으로서도 다시 조명받을 가치가 있다.



이색의 학문은 송대 성리학, 즉 주자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젊은 시절 원(元)나라 연경(燕京, 오늘날 베이징)에서 수학하며 정통 성리학을 익혔고, 귀국 후 이를 고려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힘썼다. 그는 성리학을 단순한 이론이나 교양이 아닌, 사회를 바꾸는 실천적 지식으로 여겼다.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의 여파와 원의 간섭으로 교육적 기반이 무너지고, 국자감(國子監)은 제 기능을 잃었으며, 향교와 서원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색은 국자감 대사성, 지공거 등 주요 직책을 맡아 교육 기강을 바로잡고, 성리학 중심의 교과 체계를 확산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특히 과거제 운영의 공정성을 회복하고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향교(鄕校)를 통해 지역사회에 학문을 보급함으로써 중앙과 지방 간 교육의 균형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노력은 고려 말 신진 사대부의 성장과 이후 조선시대 유학 교육 체계 형성에도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의 영향 아래 정몽주, 권근, 정도전 등 조선 개국기의 핵심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준비한 교육자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학문을 통해 인재를 기르고, 인재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 '핵심 역량 중심 교육'과도 맞닿아 있다. 교육의 본질은 시대를 이끌 인물을 길러내는 데 있으며, 이색의 삶은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색(李穡)의 삶은 학문뿐만 아니라,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깊은 굴곡을 겪었다. 그는 전하성사, 찬성사, 판중추원사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국정 운영에 깊이 참여했으나, 점차 명(明)나라가 부상하고 외교 정세가 급변하면서 원(元)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한 그는 '친원파(親元派)'로 분류되어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 결국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출사(出仕) 요청에도 불응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그의 은둔(隱遁)은 단순한 정치적 회피가 아니었다. 조선을 연 주역들이 자신의 제자들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가르친 가치와 원칙이 새 체제에서 어떻게 실현될지를 복합적으로 성찰했을 것이다. 그는 혼란한 시대에서 침묵을 선택했으나, 그 침묵은 오히려 역사의 무게를 감내하는 교육자의 내면적 외침이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교육자의 책임은 변하지 않으며, 그는 말 대신 삶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였다. 조정의 권세를 마다하고 거처를 옮겨 다니며 조용히 후학을 양성한 그의 삶은, 교육이란 '시대를 초월한 신념과 책임의 실천'임을 잘 보여주었다.



이색은 평생 시문과 산문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정리하였으며, 그의 문집은 『목은시고』와 『목은문고』 등으로 55권에 이르며(목록 포함), 현재까지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이 문집은 유려(流麗)한 문장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 정치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판 의식을 담고 있어 오늘날 교육 철학의 중요한 텍스트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는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에 대한 성찰을 오늘날 우리 사회와도 공유할 수 있는 지적 자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색은 학문을 단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경계하고, 참된 배움이란 인간의 삶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힘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교육 철학은 이러한 교육 철학은 오늘날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 대한 반성과 맞닿아 있으며, 고교학점제·자유학기제·진로 중심 교육 등 학생 개개인의 삶과 성장을 중시하는 교육 방향과도 깊이 연결된다. 이제 교육은 지식 전달에 머물지 않고,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존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이색(李穡)의 삶은 고려 말 고결한 유학자(儒學者)의 전형을 넘어선다. 그는 조선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제자들을 통해 새 시대를 열었다. 권력(權力)에 기대지 않고 학문으로 제자를 세웠으며, 고요한 품격으로 세상을 물들였고, 침묵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교육자였다. 혼란할수록 더욱 중심을 지키며, 말보다 실천으로 도(道)를 전한 그의 자세는 진정한 스승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교육(敎育)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있다.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참된 배움의 의미가 흐려지고, 선생님이 행정과 평가의 부담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이색(李穡)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교육자(敎育者)와 학생 모두가 함께 마주해야 할 성찰의 거울이다. 목은(牧隱)의 삶은 고려 말의 한 지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학문과 교육에 대한 신념은 오늘날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교육은 권력(權力)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긴 여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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