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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삼봉 정도전에게 길을 묻다
·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수를 넘어
공동체의 정의를 실천하고 시대의 모순을 해결할
'실천적 인재'를 길러내는 국가적 근간이 되어야 한다.
· 현대 교육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교육을 권력의 수단이나 입시 기술로 전락시키지 말고,
인간의 도리와 공적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2025. 12.26. 09:40:04

최 성 기 前) 남해해성고·창선고 교장

<!--☞★★★★★★★★★★☞ [ 본문:1 ] ☜★★★★★★★★★★☜//-->
대한민국(大韓民國) 교육이 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미래 역량, 공정한 선발, 학습의 본질' 등 다양한 쟁점이 교차하는 지금, 우리는 과거 지식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조선을 설계한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한 인물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위기 속 '지식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정도전은 혼란한 고려 말, 성리학(性理學)을 바탕으로 조선이라는 이상 국가를 구상하며 교육과 정치, 사상을 긴밀히 연결했다. 그는 교육을 관료 양성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학문은 백성을 위한 것이며, 배움은 사람됨을 기르는 길이여야 한다고 믿었다. 성균관과 과거제의 공정한 인재 선발 기능 강화를 추진했고, 지식은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다. 오늘날 교육 역시 그 본질을 되묻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자 하는가? 정도전의 길은 이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제도로 구현해 낸 지식인의 실천이었다.



그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한양과 경기 지역에서 학문과 정치 활동을 펼쳤다. 삼봉은 당시 권력과 결탁한 일부 귀족과 불교 세력을 비판하며, 유교적 정치 이념을 내세운 신진 사대부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성리학을 단순한 학문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이념이자 인간을 바르게 세우는 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다. 성균관 박사로서 성리학을 강론하며 관학 체제 정비에 힘썼고, 유배와 실각 속에서도 저술을 이어가며 국가의 기틀을 구상했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문감(經濟文鑑)』, 『불씨잡변(佛氏雜辨)』 등 그의 저서는 인간과 사회, 교육에 대한 총체적 성찰의 산물이었다. 그는 사상의 뼈대를 세우고 이를 제도로 구체화한 실천적 입법가(立法家)였다.



특히 그의 교육관이 주목된다. 정도전은 유교적 인재 양성을 국가 존립의 근간으로 보았다. 학문이 권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의로운 정치를 위한 도구여야 한다고 믿었다. 과거제도의 공정한 인재 선발 기능을 강화하고, 성리학 교육을 국가 인재 양성의 기초로 삼으려 했다. 시험을 통한 능력 중심 인재 등용과 공교육 기관 정비는 오늘날 교육 기회의 평등과 공정성을 생각할 때 반드시 되새겨야 할 유산이다. 그는 교육을 특권이 아닌 능력과 인격을 갖춘 인재를 가려내는 제도로 바꾸고자 했다. 이는 오늘날 대학입시제도와 교육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그가 꿈꾼 교육의 이상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정의롭고 유능한 백성을 길러내는 국가적 책무로서의 교육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도전은 성균관을 단순한 학문 연구의 장이 아닌 정치 인재 양성의 핵심 기관으로 재편했다. 그는 교육을 국가 운영의 중심에 두었고, 학문은 인간의 도리를 깨닫는 수단이며, 그것이 올바른 정치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불씨잡변』에서 그는 당시 권력과 결탁한 일부 불교 세력의 폐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신앙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이 '사람을 길러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며,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가치관과 공적 책임을 키우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교육 철학은 조선의 인재 양성 체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성리학에 기반한 관학 중심 교육체제가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조선 건국 개국 공신이었으나, 왕자 이방원(李芳遠)과 권력 투쟁 끝에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서 희생되었다. 이는 정치와 교육, 사상과 권력 충돌의 격렬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비극이었다. 정도전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독단을 경계하며 제도와 원칙을 중시했고, 왕권과 관료제 균형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의 권력욕 앞에 꺾였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상 실현을 꿈꾼 지식인이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히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교육 정책이 정치적 이해에 흔들리고, 진정한 교육자들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현실은 정도전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도전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무엇보다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는 '정치의 근본은 교육에 있다'라는 신념 아래 조선의 기틀을 세웠다. 단순한 유교적 교화를 넘어, 사람을 키우고 제도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교육은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을 요구한다. 오늘날 교육은 '입시 중심', '학벌 사회', '교육 불평등'이라는 오래된 과제와 맞서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도전의 교육 철학은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임을 다시 일깨워 준다.



오늘날 우리는 창의·융합 교육과 인공지능(AI) 시대에 교육의 혁신을 논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인간을 위한 교육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학교는 '문제를 푸는 인간'을 기르는가, 아니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인간'을 기르는가? 이 통찰은 정도전의 사유(思惟)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시대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지식인을 말하는 존재가 아닌 실천하는 존재로 보았다. 교육은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통로이자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이었다. 이것이 삼봉(三峯)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혼돈의 시대, 우리는 다시 삼봉(三峯)의 길 위에서 묻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교육은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정도전의 삶은 오늘날 교단에 그 질문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던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물음에 귀 기울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답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성찰과 실천을 거듭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길이 천천히 열린다. 교육은 언제나 그 느린 걸음을 함께하며,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더 나은 세상과 더 깊은 배움을 향해 묵묵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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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들의 삶에서 배우는

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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