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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매죽헌 성삼문, '실천하는 지성'으로 오늘의 교육을 묻다
"성삼문의 삶은 지식이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실천될 때 비로소 참된 지성이 된다는 사실을 오늘날 교육에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교육은 성삼문의 삶처럼 지식을 삶과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책임 있는 지성을 길러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26. 03.13. 14:58:40

조선 초기 문신 매죽헌 성삼문(梅竹軒 成三問, 1418~1456). 그의 이름은 오늘날 '사육신(死六臣,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이라는 이름으로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단종(端宗)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참혹한 최후를 맞은 충신 성삼문의 충절은 오랜 세월 후대에 깊은 교훈을 남겼지만, 그를 단지 비장미(悲壯美)의 상징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는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을 넘어, '배움과 실천'이라는 지성인의 본분을 삶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오늘날 교육의 의미와 방향을 성찰하는 이 시점에서, 성삼문의 삶을 교육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의 회고를 넘어, 현재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성삼문은 1418년(세종 원년), 문장과 학문이 뛰어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성승(成勝) 역시 문신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성씨 가문은 조선 초기부터 학문과 행정의 중심에 서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성실하다는 평판을 들으며 성장한 그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조선 지성의 심장부라 불리는 집현전(集賢殿) 학사로 활동하면서, 세종의 신임을 받아 정치와 문화의 중요한 과업에 참여했다.



집현전은 단순한 학문 연구소가 아니라, 조선이 유교적 이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사상적 기반과 제도를 설계하고 지원하는 정책 자문 기구이자, 학술 기관이었다. 성삼문은 이곳에서 한글 창제 이후 해례(解例) 작업에 참여하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같은 국가 서사(敍事) 편찬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학문에만 몰두하는 이론가가 아니라, 정국을 통찰하고 현실의 문제를 고민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집현전 학사로서 국왕과의 경연(經筵)에 참여하며 학문적 자문과 정책 논의에 힘썼다는 점에서도, 그의 역할은 조선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종의 서거(逝去) 이후 정국은 급속히 불안정해졌다. 문종(文宗)이 요절(夭折)하고 어린 단종(端宗)이 즉위하자, 수렴청정과 섭정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벌어졌고, 끝내 수양대군이 세조(世祖)로 즉위하며 왕위를 찬탈하게 된다. 이에 성삼문과 뜻을 함께한 이들은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건 거사를 준비한다. 훗날 '사육신(死六臣)'으로 불리는 이들은 비밀리에 계획을 추진했으나 결국 발각되어 모두 붙잡힌다. 성삼문은 모진 고문에도 동료를 누설하지 않았으며, 처형 당일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天知地知, 천지지지)"라는 말을 남기고 세조의 찬탈을 끝까지 비판했다. 그는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면서도 조선의 정의와 도리를 외치며 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충절을 넘어, 지식인이 지녀야 할 신념과 책임을 행동으로 증명한 사례였다.



성삼문의 삶은 단지 비극적인 죽음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가 몸담았던 집현전은 당대 조선의 교육, 지성, 문화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기관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최고 수준의 학술 연구소이자 국가 정책 자문 기구이며, 국왕과 직접 토론하며 국정의 방향을 고민하는 지식 공동체였다. 성삼문과 동료 학자들은 경전(經典)을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했다. 그들에게 배움은 곧 실천이자, 사회적 책임이었다. 글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은 백성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국가의 이념과 방향을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자주 잊고 있는 교육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오늘날, 교육은 과연 공동체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 성삼문은 이에 대해 직접 말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삶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지식은 개인의 성취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자각하게 하고,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경쟁과 효율'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은 강조되지만, 질문을 던지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태도는 소외되어 있다. 입시와 성과 중심의 제도 속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책임지는 법을 익히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성삼문은 되묻는다. 지성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그는 단종(端宗)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국가와 그 도덕적 질서에 충성했다. 이상은 좌절되었지만, 그는 지식인의 양심과 기준을 끝까지 실천했다.



종종 성삼문은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실패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끝까지 신념을 지켰고, 그 과정에서 지조와 책임의 가치를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 가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성과 중심의 교육을 넘어, 가치 중심의 교육을 고민하게 만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자세가 교육이 길러야 할 참된 지성이다.



우리는 성삼문을 단지 '충신(忠臣)'으로 신격화할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를 오늘날 교육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아이들이 정답만 찾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이 필요하다. 지성의 진정한 힘은 그 실천에서 비롯된다. 성삼문은 "지식은 책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삶으로 증명했다. 그는 지식을 어떻게 사회와 역사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지성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교육적 메시지다.



오늘날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은, 성삼문처럼 자신의 배움을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실천하는 지성을 기르는 데 있다. 교육은 단순히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성삼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는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지금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교육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은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참된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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