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듬해 태어났으니 예전의 나이 계산법이라면 내년이면 내 나이를 다 먹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참 오래 살았습니다.
태어나서 철드니 마을에서 부자집 소리를 들어야 겨우 보리에 쌀을 섞어 밥을 먹었고 태반이 꽁보리밥(보리로만 지은 밥)을 먹거나 고구마로 밥을 대신했고 그것도 어려우면 유행가 가사처럼 물로 배를 채우는 세상이었습니다. 논밭이 아예 없는 집에서는 아침 저녁 대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동냥밥을 해서 살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 식구도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동냥밥을 준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벼농사를 지었지만 수확량이 적었고 쌀은 비싸기 때문에 장이나 쌀장수에게 팔아 가사에 보태쓰고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조상의 제삿날, 명절, 그리고 가족의 생일날이었습니다.
농촌에서는 오직 농사만이 생업이었기에 아들을 낳으면 머슴을 얻었다고 좋아했고 6~7세 쯤되면 체구에 맞게 앙증맞은 지게를 맞추어서 보릿짚, 볏짚을 지게 했습니다.
그 시절 농촌부모들의 생활목표는 열심히 농사지어서 식구가 굶지 않고 떨어진 베옷이라도 입고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70~80대들은 죽기살기로 농사짓고 살림늘리고 먹는 것, 입는 것 아껴서 저축하고 형편에 따라 자식 공부시켜서 시집, 장가 보낸 세대들입니다.
옛날처럼 며느리 손에 밥 얻어먹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일년에 2~3번 오는 자식 가족 비위 상할까봐 신경써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허리펴고 몸도 마음도 조금 쉬려니 사회가 핵가족화되어 둥지에는 노인들만 남았고 병들고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신세를 지면서 외롭게 여생을 보내야 합니다.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억척스럽게 살아서 지금과 같이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공적은 우리에게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생활향상과 의술의 발달, 복지혜택 덕분으로 장수하며 덤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장유유서의 유교사상과 경로효친 교육덕분으로 존경받고 대접받고 살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나 지금은 우리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른다고 무시하지 말고 잘못한다고 핀잔주지말고 느리다고 재촉하지 말고 조금씩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가엾게 여겨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고 하는데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나이드는 것이 죄가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우리도 변해야 하겠습니다. 각종 교양강좌에 참가해 교양과 소양을 높이고 용모를 단정히하고 품위있게 말하고 공공장소의 예의를 지키는 등 우리 스스로를 다듬고 높여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품어온 국가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고 사랑과 배려로 정이넘치고 온기로 가득한 보물섬 남해를 다같이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