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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대, 송시열의 교육 철학이 묻는 '사람을 위한 교육'의 길
- 송시열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도덕적 인간과 사회적 책임을 갖춘
인재를 길러 혼란한 시대를 바로잡고자 했던 실천적 성리학자이자 위대한 교육자였다.
- 급변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성적과 스펙에 매몰된 교육 현실을 극복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송시열이 강조한 인격 수양과 덕성 함양의 교육 철학을 되새겨야 한다.

2025. 12.05. 14:54:40

최 성 기 前) 남해해성고·창선고 교장

<!--☞★★★★★★★★★★☞ [ 본문:1 ] ☜★★★★★★★★★★☜//-->
조선 후기의 대학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격동의 시대 속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조선 사회에서 '송자(宋子)'라 불릴 만큼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으나, 동시에 치열한 논쟁과 비판의 한가운데에 섰던 논쟁적 지식인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교육자로서 보여준 태도와 철학이다. 송시열은 학문을 넘어, 인재를 기르고자 했으며, 교육을 통해 시대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3,000회 이상 등장하며,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그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을 스승으로 삼아 예학(禮學)과 주자학에 깊이 통달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이론적 성리학에 머무르지 않고, 예(禮)를 바탕으로 무너진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실천적 학문을 지향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도덕적 인간을 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많은 제자를 배출한 그는 당대 사림(士林)의 중심이자 조선 지식 사회를 이끌었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선 주자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주자대전(朱子大全)』 편찬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주자학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강조했다. 『주자대전』 편찬은 여러 학자의 집단적 작업이었으며, 송시열 역시 그 핵심 일원으로 깊은 학문적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학문의 본질이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세우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성리학을 단순히 계승하거나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혼란한 현실 속에서 삶의 방향과 문제 해결의 원리를 치열하게 모색하려는 태도가 그의 학문 전반에 녹아 있다. 이러한 실천적 학문관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학자에게 시대를 이끄는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종종 정치와 충돌했다. 대표적 예가 예송논쟁(禮訟論爭)이다. 1659년과 1674년, 왕실 국상을 둘러싼 복제(服制) 논쟁에서 그는 예법의 엄격한 적용을 주장하며 서인(西人)의 견해를 대변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예의 해석을 넘어, 조선 정치의 향방과 붕당(朋黨)의 정당성을 가르는 싸움이었다. 1차 예송에서는 '기년복설(朞年服說)'을 지지해 승리했으나, 2차 예송에서는 남인 주도의 '삼년복설(三年服說)'이 채택되어 그의 입장이 후퇴했다. 이후 그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여러 차례 유배와 복권을 반복하다가 결국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학문과 교육을 이어갔다.



송시열(宋時烈)은 성리학 정통성을 중시하여 실학과 양명학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 새로운 사조의 확산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었으나, 그는 도덕적 재건과 인간 수양을 위한 실천적 도구로 성리학을 여겼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은 조선 후기를 경직된 사회로 규정하며, 그 중심인물로 송시열을 지목하기도 했으나,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 비판적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당대에도 그의 평가는 극명히 갈려, 노론은 그를 도통의 계승자로 추앙했지만, 남인과 소론은 교조적 인물이라 비판했다. 그는 단순한 개인을 넘어, 조선시대 지식 사회의 가치관과 정치 구조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오늘날 우리가 송시열에게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교육 철학이다. 그는 교육을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격 수양과 책임 의식 함양의 근본 수단으로 보았다. 제자들에게도 학문보다는 먼저 사람됨을 강조했고, 사회를 이끌 인재로 키우는 데 평생 헌신했다. 이는 오늘날 입시 경쟁과 교육 양극화 속에서 방향을 잃은 우리 교육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귀중한 메시지다. 성적과 스펙에만 매몰된 교육 현실 속에서, 우리는 교육의 본령(本領)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시 묻고 깊이 성찰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교육의 본질(本質)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더 본질에 집중해 배워야 하며, 지식보다 먼저 도덕(道德)과 책임(責任)을 가르쳐야 한다. 송시열이 강조한 도(道)와 심성교육(心性敎育)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다시 붙들어야 할 뿌리이다. 또한, 그의 교육은 단순한 성리학적 수양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 실천적 지향이었다.



또한 그의 유배 생활은 단지 정치적 유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증명할 기회였고, 시대가 외면해도 교육자의 책무는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제주에서 제자들과 나눈 문답은 한 시대의 유산을 넘어, 오늘날에도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말보다 삶으로 가르쳤고, 환경보다 사람을 믿었다.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敎訓)이 된다. 교육은 제도보다 신념이고, 지식보다 사람과의 관계임을 그는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금 또 다른 혼란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교육은 방향을 잃고, 교실은 입시와 성과에 쫓겨 본질을 잊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교육은 점점 그 뿌리에서 멀어지고 있다. 바로 이때, 교육의 본질을 묻고 삶으로 답했던 송시열의 발자취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 스승이 제자에게 삶으로 가치를 전하는 교육,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근본이다.



송시열이 남긴 교육자의 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지향점이며, 참된 교육은 시대를 초월한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길, 그것은 바로 사람을 위한 교육이다. 진정한 교육은 인격 형성과 덕성 함양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과 사회 모두의 성장을 이끄는 밑거름이 되어야 하며, 변함없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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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들의 삶에서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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