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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남해 백성의 삶을 한글로 세심하게 기록, 처한 환경을 초월 교육자적 사명감을 실천했다
오늘날 교육은 후송(後松) 유의양이 강조했던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적 성찰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2026. 09.11. 15:40:49

조선 후기 문신(文臣) 후송(後松) 유의양(柳義養, 1718~미상)이 남긴 기행문(紀行文) 한 편이 오늘날 교육 담론 속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바로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이다. 이 다섯 글자의 제목을 가진 글은 유의양이 유배지 남해에서 약 5개월간(1771년 2월 26일부터 7월 15일까지, 약 140일간) 머무르며 기록한 산문체 기행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유람기로 보일 수 있으나, 이 글은 억울한 유배를 겪은 한 인물이 지역의 삶과 문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한 귀중한 문학적·교육적 성과물이다.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붓을 들고 사유(思惟)하며 기록한 그의 태도는 오늘날 교육이 지향해야 할 성찰과 탐구의 정신을 생생히 일깨워 준다.



유의양(柳義養)은 공조참판을 지낸 유무(柳懋)의 아들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예조참의, 의주부윤, 공조참판 등 주요 관직을 역임했으며, 성균관에서는 경학과 교육을, 예문관에서는 문서와 교서 업무를 담당하는 등 학문과 행정 양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조정의 신망을 받았다. 그의 저서 『춘관통고(春官通考)』와 그 일부인 『춘방지(春坊志)』는 조선시대 관제(官制)와 예식(禮式)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술로, 깊은 학문적 소양과 교육행정 및 인문학의 접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1771년, 조선 후기를 뒤흔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유의양은 남해로 유배되었다. 당시 조선의 정국은 노론 내부의 벽파(僻派)와 시파(時派) 간 갈등이 심각했고, 소론과도 대립하는 복잡한 권력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권력 투쟁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유의양은 그 소용돌이에서 밀려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유배지에서 문신이자 유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남해의 풍속과 사람들의 삶을 치열하게 관찰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 낯선 땅, 고된 생활 속에서도 학자로서의 사명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탄생한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은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산문 기행문으로, 지역사회의 일상과 문화를 세밀하게 포착한 귀중한 민속학적 자료이자 교육적 기록이다. 특히 이 글에는 노량 나루와 이순신(李舜臣), 남해읍의 마애비(磨崖碑), 남해의 자연과 금산의 절경, 주민들의 생활 방식과 지역 특산물, 그리고 유배 중 경험한 고충 등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교육과 관련된 내용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데, 이는 오늘날 지역 간 교육 격차나 교육 접근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유의양이 보여준 시선은 단순한 엘리트 관료의 호기심을 넘어, 백성과 일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했다. 그는 유배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백성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배움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여 글로 남겼다.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은 주로 한글로 기록되었으나, 필요에 따라 한문도 혼용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이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 즉 기록의 접근성을 높였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었던 이들에게 지식과 정보에 대한 창을 열어주는 실천이었으며, 지역 공동체 내 소통의 기반이 되었다. 나아가 문자 해독 능력과 교육의 민주화를 가능케 한 점에서, 오늘날 교육이 추구하는 '포용성과 다양성, 접근성'이라는 가치와도 깊이 연결된다.



유의양은 또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편찬에도 기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저작에서 그는 위계적 권위만을 강조하지 않고 예(禮)를 통해 인간과 공동체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이는 단지 제도적 질서 유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다운 관계 형성에 방점을 둔 그의 사유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인성교육과 공동체 교육, 학교 교육의 역할에 관한 현대적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비록 유배지에서의 체류 기간은 짧았지만, 그는 자녀 교육과 제자 양성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강한 열정으로 글을 가르치고 도(道)를 전파하려 했다. 이는 교육이 장소나 지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늘날 '교육은 환경이 아니라 의지'라는 교육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유의양의 삶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람을 길러내는 일임을 깊이 일깨우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육 본질을 지키려 한 그의 모습은 교육자 정신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 시대, 디지털 전환, 미래 역량 중심 교육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유의양의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은 시대를 뛰어넘어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는다. 교육(敎育)은 인간을 이해하고 성찰하며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지혜를 나누는 과정임을 그는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오늘날 교육도 이러한 본질적 가치 위에 설 때, 기술과 혁신은 비로소 인간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기록을 멈추지 않았던 유의양의 삶은 오늘날 교사와 학부모, 교육 행정가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교육은 단지 시험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시대를 읽는 지혜라는 사실을 그의 삶이 증명하기 때문이다. 『남해문견록』과 그 밖의 저작들은 유의양이 살았던 시대와 마주한 교육적 고민의 산물이자, 유배지에서 펼쳐낸 성찰과 관찰의 기록이다. 이 기록들은 우리가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유의양은 교육이란 시대와 상황을 넘어 언제나 인간을 향해야 하며, 이것이 진정한 교육의 길임을 일깨워 준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사람에 있기에, 우리는 그의 정신을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 다시 살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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