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은은하고 헤프지 않은 향기를 '암향'(暗香) 이라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매화를 통해 맑고 고고한 정신에 이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김기현 교수와 안도현 시인이 현대의 문법으로 다듬은 " 열흘 가는 꽃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퇴계의 매화시를 모은 시집입니다.
매화를 소재로 쓴 퇴계의 시는 모두 107편에 이릅니다.
퇴계 이황도 매화를 끔찍이 좋아한 바보였습니다.
매화치(梅花痴)라고 옆에서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떤 시에서는 '매형'(梅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매화를 형으로 받들었습니다.
술상 한가운데 매화분(梅花盆)을 올려두고 대작을 하기도 하고, 퇴계는 늙어 초췌해진 자신의 얼굴을 매화에게 보일 수 없어 아래채로 화분을 옮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치부를 보일 수 없었던 것이죠.
일생 동안 이처럼 매화에 집중해서 많은 시를 쓴 시인은 없을 것입니다.
퇴계와 단양에 살던 기생 두향과의 러브스토리의 매개체 역시 매화입니다.
퇴계의 매화 사랑에는 관기 두향(杜香)과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세 때 두향의 나이는 방년 18세였습니다.
두향은 인물이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문(詩文)과거문고에 능하고
화분에 매화를 기르는 분매(盆梅)솜씨도 좋았습니다.
어느 날 두향이 고이 길러온 매화분을 퇴계의 처소로 옮겨 스스로 마음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절개가 곧은 퇴계도 첫 부인에 이어 재취마저 사별하고 아들까지 잃은 처지라 설중매 같은 두향에게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든 두 사람은 매화가 만발하듯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단 10개월 만에 퇴계가 풍기군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퇴계가 떠난 뒤 두향은 신임 사또에게 청원하여 관기 생활을 청산하고 평생 퇴계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다고 합니다.
지절(志節)을 지키고 오매불망 퇴계만을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낸 것입니다.
퇴계가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2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향에 대한 퇴계의 속 깊은 사랑은 단양에서 헤어질 때 그녀에게서 선물 받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 것만으로도 넉넉하게 드러납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들은 두향은 단양에서 도산서원까지 나흘 동안 걸어가 문상하고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검을 퇴계와 자주 거닐던 남한강 강선대 밑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나 냉기 속에서 향기를 발하는 꽃입니다.
그래서 북송의 시인 소동파는 매화를 일컬어 추위를 넘어서는 기골이 있다 하여 '옥골빙혼(玉骨氷魂)'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퇴계와 두향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옥골빙혼의 절개, 매화에서 느껴지는 속기(俗氣) 없고 고상한 사랑의 기개가 하나로 승화되는 게 느껴집니다.
오늘날처럼 무절제하고 가벼운 사랑의 풍조에서 꿈도 꿀 수 없는 격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퇴계는 1570년 음력 12월8일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세상을 떠나는 날 그는 매화분에 물을 주라 당부하고 병석에서 꼿꼿이 일어나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 보지 않은 자는 이른 봄 매화 향기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퇴계와 두향의 러브스토리를 읽고 현세의 시인이 느끼는 감성으로 시를 한 수 지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