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들은 계속된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남해군을 포함한 군단위 지자체의 경우 농촌인구 고령화에 따른 절대인구 감소가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며 갈수록 빈 점포가 늘고 있어 우려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본지는 남해군소상공인회(회장 유국군)과 함께 지역 소상공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어려운 시기이지만 변함없이 손님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들을 찾아 그들의 노하우와 나름의 비법을 들어봤다. 힘겨운 시절이지만 자영업을 영위하는 소상공인분들에게 이 기사들이 나름 사업 대안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힘겨운 경제 상황을 잘 이겨내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1. '선소마을' 그리고 '선소 바다'와의 인연
남해군 읍 선소마을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한때 전어 마을로 유명했다.
이어 80년대 후반에는 강진만 피조개 사업으로 '멍멍이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니는 부자 동네'로 전국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 유명한 선소마을에 현재 아들의 식당 사업(선소바다/남해읍 선소로 176)을 돕고 있는 김둘이 씨가 시집 온 것은 87년 쯤 일이었다.
김 씨는 "당시 삼천포에도 남해 선소마을은 '멍멍이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니는 부자 동네'로 소문나 있어 뒤돌아볼 것도 없이 신랑을 따라 선소마을로 시집 왔다"며 호쾌하게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어 "철 모르는 시절, 시집 왔을 때 시어머님만 계셨고. 옆에다 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신랑은 외항선을 타는 이유로 많지 않은 농사에 의지해 아이 둘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 후 작은 배를 얻어 생활을 영위했지만 김 씨에게는 어업은 적성에 맞지 않아 평소 관심이 있었던 식당을 작게라도 열어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1993년 신랑의 이름을 딴 '광호횟집'을 남해읍내에 열게 됐다.
옛날 당시를 알고 있는 분들은 읍내서 유명했던 광호횟집은 상호는 횟집이었지만 장어구이로 유명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장어구이는 남해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보편화된 메뉴가 아니었다.
특히 남해는 사면이 바다라 각 가정에서 나름 직접 장어를 구어 먹던 시절이라 식당에서 장어구이를 파는 집은 없었다.
김 씨는 "과거 여름 한철 상주해수욕장에서 신랑과 함께 장어구이를 몇 주간 팔았는데, 여기서 장사라는 걸 처음 알게 됐고 나름 장어구이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그 자신감으로 가게를 얻어 장어구이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어 "당시 바닷가 집집마다 해 먹는 장어구이로 장사가 되겠냐는 지인들의 말씀도 있었지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와 광호횟집은 17년이라는 세월을 지켜냈다. 지금와 되돌아보면 광호횟집은 남해에서 장어구이 원조였다. 저희가 장어구이를 시작한 이후 읍, 삼동 등지에 속속 장어구이집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김 씨는 장어구이만큼은 자신이 원조라고 자부했다.
또 "당시는 반드시 국을 먹는 문화가 있었는데 전통 방식으로 장어탕을 끓어 손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다 보니 장어구이뿐 아니라 장어탕을 먹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17년 역사의 과거 광호횟집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장어로 돈은 못 벌었지만 장어구이만은 내가 원조라는 자부심은 늘상 가지고 살고 있다고 이웃에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2. 어릴 적부터 장어와 인연 깊었던 '선소 바다' 이성철 사장
김 씨는 선소 바다에서 작은 배로 횟집에 소요되는 신선한 해산물을 공급했던 남편의 건강 문제로 광호횟집은 그렇게 17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 뒤 최근 바다장어 샤브샤브 전문 '선소 바다'가 문을 열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장어에 진심이었던 아들의 제안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씨는 "어느날 집에서 해 먹는 장어 샤브샤브로 가게를 열었으면 한다고 아들이 제안해 와 고민 끝에 다시 장어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면서 "그 옛날 아들은 방과 후면 가방을 벗어 놓고 식당 일을 도왔다. 그러다 학교 선생님을 자주 식당에서 마주쳤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그 나이에 부끄러워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상 횟집 일을 도왔다"며 아들과 장어의 깊은 인연을 회고했다.
어릴 때부터 장어를 다루는데 이미 익숙해 있는데다 요리학원도 다녔기에 아들의 바다장어 샤브샤브 제안을 응원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성철 사장 은 "어릴 적 작은 힘이지만 도와 드리고 싶었다. 서빙도하고 설거지도 했다. 그러다 장어를 다듬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면서 "어떻게 보면 그 인연이 전국에서도 드문 바다장어 샤브샤브 전문점을 열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은 가정을 꾸려 부인과 함께 잊지 못할 샤브 샤브 맛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
#3. 바다장어 샤브샤브 원조 '선소 바다'
맛, 친절, 청결은 남해바다 샤브샤브가 추구하는 3가지 가치이다.
장어구이 원조인 어머니와 함께 만들어낸 육수에다 비율에 맞게 맞춰진 야채들을 한아름 넣어 끓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다듬어진 장어가 꽃이 핀 모양으로 익혀진다.
먹기 좋게 보기 좋게 다듬어진 장어에 칼집을 미리 내어 놓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익혀진 장어를 건져 내어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선소바다 소스에 찍어 한입 깨물면 단백한 장어에다 육수와 소스에서 일어나는 조화로 빚어진 풍미가 일품이다.
특히 국물을 좋아하는 손님들은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육수에서 우러나오는 샤브샤브 국물 별미로 손꼽는다.
현재 바다장어 샤브샤브는 전국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메뉴다.
전국에서도 바다장어로 샤브샤브를 하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산물이 풍부한 여수시에도 한 곳 정도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김둘이씨는 "남해에서 장어구이는 내가 원조고 바다장어 샤브샤브는 아들이 원조다. 그래서 우리집은 원조집안이다"며 웃으며 말한다.
바다장어 샤브샤브 전문점인 '선소바다'의 또하나의 특징은 15가지 이상 나오는 밑반찬이다.
통상 15~20가지 밑반찬이 나온다.
아직 어른이 작은 배로 선소 앞바다에서 조업하기 때문이다.
바다장어 외에도 쭈구미, 낙지, 전어 등등 제철 수산물들이 밑반찬으로 오른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맛도 맛이지만 풍성한 상차림에 배부르다는 말들이다.
갯장어보다 가격대도 좋고 식감 또한 좋아 남녀노소 모두 선호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점심특선으로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매운탕과 장어탕이 마련되어 있다. 장어를 고아 우려낸 국에다 씨레기를 넣고 다시 다듬어진 장어를 넣어 끓인 메뉴다.
가성비와 맛, 그리고 건강을 생각한다면 점심으로 즐기기엔 그만이다.
![]() |
#4. '선소 바다'가 전해주는사람 사는 이야기
남해에서 '장어구이'의 원조라 자부하는 김둘이 씨는 'LG의인상'(LG복지재단)을 수상한 남해행복베이커리 김쌍식 대표의 친누나다.
김둘이 씨는 "86년 삼천포에서 남해로 시집온 뒤에도 어려운 친정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동생들 걱정이 많았다. 시집 올 당시 나이 차이가 있어 동생들은 어렸다. 다행히 외갓집이 남해였고 삼촌이 읍시장에서 빵집을 하고 있었기에 훗날 동생도 남해와서 빵기술을 배웠다. 동생은 제빵기술을 몸으로 익히고 나름 공부에도 매진했다. 그 동생이 빵식이 아재로 소문난 행복베이커리 김쌍식 대표다"면서 "자신도 어려운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살펴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사회에서 받은 만큼 지도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김 씨는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한날 누가의원을 찾았더니 원장께서 '아들을 낳으라고 어른들이 둘이라고 짓지 않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맞다. 둘러서라도 아들을 얻고 싶어 '둘이'라 어른들이 지었고 실제 밑으로 남동생 쌍둥이를 얻었다. 쌍식이는 쌍둥이 중 동생이다. 가끔 동생 이름에 쌍자를 왜 붙였는지 묻는 분이 계신데 쌍둥이라서 어른께서 그렇게 지어 주었다"며 웃으며 말한다.
남해읍 선소마을 앞바다 바다장어 샤브샤브 전문점 '선소바다'에 가면 입맛을 당기는 별미 외에도 장어구이 원조 엄마와 바다장어 샤브샤브 원조 아들이 전하는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