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문화
남해人
향우
기획특집
남해人
농어업
오피니언
복지
환경

[김재명의 남해시론] 설날! 고향, 그리고 어머니의 바다

2026. 02.13. 13:54:09

김재명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채 밝지도 않은 하늘을 가른다. 새벽의 여명은 철썩거리는 파도를 밀어내며 포말을 남기고 개펄을 드러내게 한다. 썰물이다. 아직도 남해의 한겨울은 매서운 바닷바람으로 살을 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한 무리 두루미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다. 가끔씩 허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곤 이내 개펄을 헤집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아! 어머니들이었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개펄을 천천히 살피며, 숨구멍을 찾아내고 호미로 뻘밭을 가르며 한 톨 한 톨씩 입을 열고 있는 조개들을 정성스레 채취한다. "너그 아들 이번 설에 온다쿠더나?" "아이구 가 잘 돼 있제!" "우리 아는 이번에 바빠서 못 올끼라 쿠던데 니는 좋것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입김이 겨울 바다로 퍼져 나간다.



이 겨울의 개펄에서 어머니들의 손끝으로 빚어낸 해산물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 먼 길을 돌아오는 자식들에게 전하는 '살아있는 따뜻한 안부'이며, 그 무엇보다 진실된 사랑과 희생의 징표다. 거친 바람 속에서 손이 얼어붙을 듯한 찬 기운도, 몸이 피곤해 허리가 저려올 때도, 어머니들의 마음은 온전히 제 자식들을 향해 가 있다.



어린 시절, 나도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힘겹게 해산물을 주워 말리고, 품앗이로 이웃들과 나누고, 그렇게 자라난 내가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날 때, 어머니의 눈빛은 늘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의 손길은 더욱 바빠지고, 나는 멀고 먼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세었다.



드디어 그날, 내가 고향집 문턱을 넘어섰을 때, 어머니의 얼굴에는 세월이 그려 놓은 깊은 주름은 늘었어도 언제나 변치 않는 따스함은 여전하였다. 허리를 굽혀 갯벌을 헤매던 그 고단한 삶의 흔적마저 사랑스러웠다. "어서 오이라, 재명아!" 하고 불러 주시는 그 한마디는 켜켜이 쌓였던 일상의 서럽던 기억을 한순간에 눈물로 녹아내리게 했다.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였다.



설 명절, 진수성찬 밥상 위에 올려진 해산물들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빚어낸 보석이었다. 그 해산물 하나하나에서 우리 가족의 사랑과 연대가 빛났다.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부드러운 미소는 늘 우리를 품었고, 그 품에 안기는 순간 세상은 모든 게 평안해졌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고향집 마당에 남은 겨울의 찬 기운마저도 어머니의 품 안에서는 녹아내렸다.



나는 그리움과 감사가 섞인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다짐했다. "어머니, 당신의 그 손길을 잊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이 사랑의 가치를 이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늘 불효했다. 어머님은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되었고, 나는 칠십이 되어버렸다. 그리곤 욕심스럽게도, 해준 게 하나도 없는 데도 설 명절이면 나의 아이들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누구에게라도 설 명절 아침 차려진 고향집 식탁과, 근사한 손님이 되어 이웃으로부터 대접받는 상차림은 단지 맛있는 밥상의 한 부분이 아니라, 어머니와 이웃들이 사랑으로 만들어낸 생명의 연속성이다. 그 손길로 빚어진 소중한 선물 앞에서 우리는 고향과 공동체가 주는 위안과 힘을 다시금 느낀다.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들의 곁에 든든한 품으로 존재하는 어머니와 고향, 그 품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바쁘고 험난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켠에는 늘 그리움이 자리했다. 지금에 사 생각하니 그리움이란 게 바로 그 '고향'이었다.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우리의 뿌리요, 삶의 힘이다. 구정 설날은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고향의 품으로 다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연례행사가 아니다. 여기 어머니가 있고, 이웃이라는 공동체가, 품어왔던 기다림으로 그리움에 절절했던 사람들을 맞이하고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서 영원히 기억하자는 언약의 날이다.



설날을 맞아, 수많은 향우가 고향 땅 남해로 돌아왔을 거다. 먼 타지에서 쌓인 피로를 잠시 내려놓고, 부모님의 손길, 친구의 미소, 이웃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다시금 느끼려는 간절한 마음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귀환도 있고, 실패로 지금이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걸 녹이는 용광로다. 흠뻑 취해서 평안해도 좋다.



고된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가운데, 매일 매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 군민들의 모습도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그동안 코로나로 이어진 경제 불황과 건설경기의 어려움, 비상계엄과 대통령탄핵, 내란재판이란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라진 국론, 그리고 공동체가 만들어낸 이해관계 속 복잡한 각종 갈등까지 참! 다사다난했다.



비록 지난 한 해가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누군가는 하루하루의 생계에, 누군가는 공동체의 내일에 대한 고민에 밤잠을 설치지 않았던가?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도,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을 줄 아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 바로 그 남해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씨앗이 자라나, 좀 더 나은 내일을 여는 열매로 맺히도록 노력하자.



고향은 언제나 변함없다. 어머니의 품이다. 따스한 눈빛과 든든한 손길로 우리를 감싸 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준다.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혼자가 아님을 잊지 말자. 서로의 손을 맞잡고, 온정을 나누며 함께 가는 길, 그 길에서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 낼 것이다. 혹여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당신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함께 이겨낼 것이다."라는 우리가 있음을 믿자.



금 년 한해는 '오직 남해!'라는 슬로건 아래, 어머니의 든든한 손길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행복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 누구 하나 소외됨 없는 따뜻한 공동체,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남해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자. 설날의 기쁨이 고단한 삶의 쉼이 되고, 고향의 정이 마음을 잇는 노래가 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지길 바란다. 온전한 평안과 건강,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하길, 나아가 우리 남해군민 모두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빛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실시간 HOT 뉴스

가장 많이본 뉴스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