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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황혼의 길, 지게와 바작대기처럼 살아갑시다

2026. 02.13. 13:54:57

내가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어느덧 53년이라는 성상(星霜)이 흘렀다. 스물여덟 살,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에 친척의 소개로 만나 가약을 맺었으나, 우리 부부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던 시절, 병치레 잦던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상실감과 농사일에 서툰 며느리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을 불러왔다.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의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낯선 환경에서 홀로 풍파를 견뎌야 했던 아내였을 것이다.
이후 단칸방 분가를 거쳐 세 아이의 부모가 되기까지, 아내는 묵묵히 시조부모님을 봉양하고 시어머니의 3년 병구완과 치매 앓던 시아버님의 2년 수발까지 오롯이 감내했다.
직장 생활을 핑계로 가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남편 대신 아내는 효심으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모진 시련을 원망 한 자락 없이 이겨낸 아내가 이제 와 생각하니 참으로 대견하고 고맙다.
직장 따라 열 번이나 이사를 다녔던 우리 부부의 삶은, 사실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 모두의 초상일 것이다.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은 장성해 둥지를 떠났고, 남겨진 집은 고요함 속에 쓸쓸함만 감돈다. 이제 자식과 손주의 안부 전화를 위안 삼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하나다. 바로 '우리 스스로의 삶'을 찾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끝까지 곁을 지켜줄 이는 결국 부부뿐이다. 지난날을 반추하며, 동시대를 걷는 부부들에게 여생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섯 가지 지혜를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젊은 시절의 열정은 가셨을지 몰라도, 이제는 연민의 정으로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세월의 풍파에 깊게 파인 서로의 주름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완성이다.
둘째는 이해와 양보의 미덕이다. 가부장적인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남편, 고생한 남편을 어머니 같은 따뜻함으로 감싸 안는 아내의 포용력이 필요하다.
셋째는 건강 관리다.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인 동시에, 자식들의 짐을 덜어주는 최고의 노후 대책이다.
넷째는 감사의 표현이다. 관계는 상대적이다. "고맙다", "수고했다"는 작은 말 한마디가 해묵은 감정을 녹이는 묘약이 된다. 쑥스럽다면 문자나 메모라도 활용해 마음을 전해야 한다.
다섯째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눈과 귀가 흐려지고 기억도 가물거리기 마련이다. 이를 탓하기보다 서로의 머리가 되고 눈과 귀가 되어주며 모자람을 메꿔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말의 순화다. 나이가 들수록 직설적인 표현으로 상처를 주기 쉽다. 대화하기 전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귀에 거슬리지 않게 다듬어 말하는 배려가 절실하다.
지게는 홀로 서지 못한다. 반드시 '바작대기(지겟작대기)'가 받쳐주어야 짐을 싣고 바로 설 수 있으며, 길을 걸을 때도 지게꾼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지탱해 주는 지게와 바작대기처럼, 남은 생 또한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동행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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